2012년 5월 13일 일요일

태국이해위한 간단한 상식


태국이해위한 간단한 상식
(한권으로 이해하는 THAILAND 김홍구저,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에서)
국 명
태국의 명칭은 1836년까지 므엉 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1856년부터 샴(Siam, 타이어로 싸암), 1939년 쁘라텟 타이로 불리다가 제 2차 세계대전후에는 다시 샴, 그리고 1949년5월 11일부터 오늘날까지 쁘라텟 타이 또는 타일랜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공식 국호는 Kingdom of Thailand이다. 타이(Thai)라는 말은 타이어로 자유를 의미하며 따라서 타일랜드는 자유의 땅(Land of the Free)이라는 의미이다.




타이의 국기국기는 적, 백, 청색의 5개의 수평 띠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를 의미하는 제일 바깥의 적 띠는 똑같은 크기의 종교를 의미하는 백 띠를 둘러싸고 있다.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심부의 청띠는 국왕을 상징한다. 따라서 국가, 종교, 국왕의 3가지는 태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 3색기의 원조는 라마 6세 때인 1917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는 절대주의 상징인 흰 코끼리가 붉은 색 바탕 위에 그려졌다.




타이의 국장

왕국의 문장(紋章)
태국의 국가 또는 왕실의 상징은 크룻(Garuda)이다. 크롯은 반은 새이고 반은 인간의 모습(힌두신인 비슈누의 탈 것)을 띤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태국의 행정 부서에서는 크롯을 그 부성의 표상과 혼합시켜 사용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느슨하게 구조화된 사회
태국인의 개인주의 성형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보강되고 있다. 첫째는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이다. 태국인은 전통적으로 상좌부불교를 신봉하며 교리의 핵심은 개인적인 업의 축적에 따라 현생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해탈에 이르기 위해 팔정도를 준수함으로써 선업을 축적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함이 없이 자신 개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분제와 후견인-피후견인 관계
전통 태국사회는 싹디나 제도에 의해 위계적 신분 질서가 잘 정비되어 있었던 신분제 사회였다. 아유타야 왕조 때 재정된 싹디나에 관한 법에 따라 사회 각 구성원은 지배계급인 왕족, 관료, 와 피지배 계급인 프라이, 노예 등으로 분류되고 이들에게는 계급에 따라 토지가 분배되었으며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부과 되었다. 또한 이 제도에 의하면 왕은 전 영토의 주인으로서 자신만이 토지소유권을 보유하며 국민들에게는 일정 기간 토지를 분배했으며 분배된 토지는 세습되지 않고 언제라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왕은 고대 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인 토지를 통제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고 왕을 정점으로 하는 계서사회질서를 확립하게 되었다. 한편 싹디나 제도는 토지를 분배할 때 이에 상응하는 규모의 프라이까지 분배했다. 즉 이 제도는 아유타야 사회의 주요 인적자원이며 생산 수단인 프라이를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왕권을 대신하여 효율적으로 통제하게 했다. 프라이의 수는 지배계급의 부와 권력을 보장하는 정치적, 경제적 사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왕권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이후의 근대사회로 이어져 내려왔다. 즉 왕권을 대신하여 프라이를 통제하게 되는 귀족, 관료 등의 지배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피후견인으로 자신의 휘하에 모음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코자 했다.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관계는 관료기구나 군대조직 또는 정치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일반적인 가치관
국왕에 대한 존경심 : 태국의 왕권 전통은 쑤코타이 시대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32년 입헌혁명으로 절대군주제가 입헌군주제로 바뀌었으나 오늘날에도 국왕은 국가의 원수로서 국가, 사회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권 위 : 태국인은 권위에 복종하는 습성이 강하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주로 아유타야 시대 이래의 싹디나 제도에 의한 제서사회의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다.
연장자 우대 : 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연장자에 대해 존경할 것을 교육받는다. 또 모르는 사람이라도 연장자에 대한 예절을 잘 지킨다. 이러한 예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윗사람에게 가족 내에서 사용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것은 국가단위에서 단결의식을 고양하게 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개인주의 : 태국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태국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규율이 부재하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개인주의적 태도는 권위를 갈등 없이 잘 수용한다. 그들은 권위 앞에서 복종하고 예의를 갖추면 존경한다. 이 같은 권위에 대한 복종은 불교교리인 업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과거의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자신의 낮은 지위 역시 업의 소산으로 생각함으로써 현실에 순응하는 경향이 짙다.
탐 분 : 불교 사회인 태국에서는 불교적 가치관을 중시한다. 따라서 국민들은 불교의 교리에 따른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업악과(惡業惡果)의 법칙을 믿고 있으며 승려나 사원, 또는 불우이웃에 대한 탐분(공덕쌓기)행위를 일상화하고 있다.
남짜이 : 태국인은 남짜이(인정)가 많다. 인정은 불교의 가르침인 자비로움과도 같은 것이다. 태국인들의 인정은 친구나 이방인들을 친절하게 대할 때 잘 나타난다. 이방인이 농촌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것이 태국인들의 따뜻한 심성이다.
마이뺀라이 : 태국인들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체념이 빠르다. 태국인들은 마이뺀라이(천만에요,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데 불교의 업의 교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현세의 행, 불행이 모두 과거 선업과 악업의 소산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짜이옌 : 짜이옌은 냉정함을 의미한다. 냉정함이란 어떤 일에 간섭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함을 뜻한다. 냉정함을 갖고 불행한 일을 피하며 각 상황에서 즐거운 것을 취한다. 따라서 태국인은 맞대 놓고 충돌하는 것을 피한다. 냉점함은 갈등, 자극, 탐욕, 열중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끄렝짜이 : 태국인들은 내적인 자유는 감정적, 물리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깨달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조화는 다른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함으로써 유지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강력한 끄렝짜이가 발달 되었다. 끄렝짜이는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난한다던지 다른 사람에게 도전함으로써 괴롭히는 것을 극력 싫어하는 것이다. 또한 외적인 분노의 표시도 사회적 조화를 깨뜨리는 위험한 일로써 무지하고 미성숙한 일로 인식하고 있다.
쾀 싸눅 : 태국인들은 즐기는 일(쾀 싸눅)을 좋아한다. 비록 많은 이익을 주는 일이라도 즐거움을 주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오락 행위나 행사를 아주 즐긴다. 이러한 가치관의 형성은 아마도 풍부한 자연 환경 때문에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던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일에 대한 진지성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식도락 : 태국인들은 먹기를 즐기며 먹을거리 종류도 풍부하다. 강한 신맛, 짠맛, 단맛, 매운맛을 즐긴다. 또 날 음식으로는 날 야채, 날 과일, 생고기, 날생선, 새우, 굴 음식도 즐긴다.
사 치 : 태국인들은 운명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방콕의 길가나 백화점 등과 같은 곳에서 점성술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유대감 : 가족의 유대감은 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적 틀 속에서 태국인 들은 매우 제한적인 견해를 공유하게 된다. 태국인들은 우정이 매우 강하다. 타국어는 인간관계와 자기희생을 표시하는 표현이 풍부하다. 이런 관계는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안 따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친구하는 의미이다. 한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의 친구는 자신에게 닥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도와야 한다.
결혼과 가족관계
결 혼 : 태국의 농촌에서는 남성 23-4세, 여성 17-8세가 되면 결혼 상대자를 구하게 도니다. 남성의 경우에 성인의 나이인 20세가 되면 우기 3개월 동안인 농한기에 사원으로 일시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생활방식이 되었다. 출가한 경험이 있는 남성을 성숙한 인간이라는 의미로 ‘콘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는 이 같은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하게 된다. 태국에는 맞선과 같은 것은 없다. 보톤 같은 마을에서 남성은 여성의 부친에게 찾아가 청혼을 한다. 결혼 일자는 신부의 아버지가 승려와 상담하여 정하게 되지만 음력 짝수 달을 선호하고 있다. 결혼식은 신부 집에서 보통 치르게 되는데 필히 여러 명의 승려를 초청하게 된다. 결혼식장에서 승려들의 앞에 서 있는 신랑, 신부에게 승려의 대표는 성수를 뿌려 축복하며 앞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마음을 준비를 하도록 축사를 하게 된다. 결혼식 후 신랑, 신부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경향이 있으나 어떤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동북부에서는 신랑은 일시적으로 신부의 부모와 살게 되며 첫 아이가 태어난 후 독립하거나 또는 신랑의 부모와 사는 형태가 많다. 전통적인 태국 농촌에서는 모계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태국에서는 결혼 후 신부는 신랑의 성을 사용하고 있으나 법적으로 신랑, 신부 사이의 엄밀한 상하 관계는 볼 수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태국에서 성을 사용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1916년 라마 6세의 명을 받아 태국 국민들은 모두 부계의 성인 ‘남 싸꾼’을 따르게 되었다. 남은 이름이며 싸꾼이라는 말에는 계통 또는 세습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태국 국민 사이에서는 현재에도 성은 이름과 비교하여 2차적인 의미 밖에는 갖지 못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공개 석상에서도 성 대신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태국의 도시와 농촌
방콕과 도시사회
태국의 수도 방콕은 정치, 사회, 경제의 중심지이다. 방콕과 농촌 사이에는 경제적 격차가 극심하며 태국인들이라면 누구라도 방콕에 사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방콕에는 일종의 계급구조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다. 그 정점에는 왕족, 귀족계급이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거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층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방콕 사회계급의 사실상의 정점에는 관료, 군부 엘리트와 산업, 무역, 금융계를 지배하는 자본가 엘리트라고 하는 두 개의 엘리트 집단이 있으며 자본가 엘리트 집단은 화교의 비율이 높지만 화교는 태국사회에 동화되어 있어서 다른 동남아 국가와 같이 화인계라는 집단의식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관료, 군부 엘리트 집단은 후견인-피후견인 관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후견인인 고급 관료나 고급 장교들은 피후견인인 자신들의 부하들을 돌보고 피후견인들은 그들의 후견인에게 충성함으로써 보호를 받게 된다. 이에 반해서 자본가 엘리트의 경우에는 인간관계에서 점하는 친족의 비중이 높고 영리와 결부된 개인의 능력이 더 중시되고 있다.
관료, 군부 엘리트 집단 밑에는 의사, 법조인, 대학교수 등의 전문직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들의 숫자는 근래에 들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 전문직 밑에는 중간 계급의 관리ㅡ 저널리스트, 교원, 중소기업 경영자 등이 있다. 이들은 소위 신 중산층으로 불리고 있다. 태국의 신 중산층은 점차로 켄껜, 치앙마이, 코랏 나컨씨탐마랏 등의 지방도시에서도 소수 나타나고 있다. 화인계 태국인 실업가, 대학교수, 교사 등의 지방도시 신 중산층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신 중산층 밑에는 방콕의 경우 수공업자, 숙련 노동자, 서비스업 종사자 등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화 되었다. 이들은 보통 태국에서 정치적 이수로 학생들의 데모가 발생할 때 동조하는 세력이 된다.
방콕 계급구조의 하층부에는 비숙련 노동자, 가사 노동자, 삼륜차 운전자, 길가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 등이 위치하고 있다. 방콕에서 고용되는 가사노동자(가정부)는 동북부 출신이 많다. 이외에 방콕의 최하위층에는 농촌지대로부터 가출한 계절노동자, 환락가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또한 방콕 주변의 도시화로 근교 농촌이 도시로 흡수되었으며 그 농촌은 도시적 환경에 둘러 쌓인 형상으로 남겨지게 되고 도시의 저소득층 주민이 유입되어 열악한 거주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방콕의 계급 구조는 사실상 그 경계가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현재의 사회구조는 그 근원을 아유타야 시대의 싹디나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농촌 사회의 생활 패턴
중부 태국의 싸암족, 동북부의 라오족, 북부 타이, 남부 타이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생활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태국 농촌생활의 특색은 계절풍에 의해 5워부터 11월까지의 우기, 11월부터 4월까지의 건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몬순에 의해서 수전 경작을 반복하는 생활의 사이클을 유지하고 있다. 태국인의 전통적인 설이 있는 달이 4월이다. 이때는 일 년 중 가장 더울 때이며 건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매우 가문 계절이며 5월 초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5월 하순부터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된다. 우기에 내리는 비는 스콜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일에 2-3회 정도 강하게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6월에는 논의 못자리를 만들고 파종을 하는데 이때부터 농민의 생활은 매우 바쁘다. 사원의 행사로서는 태국식 음력 6월 중순 부처의 탄생, 성도, 열반을 기념하는 완 위싸카부차 축제가 개최되고 이때에는 성인 남성들이 단기 출가하여 득도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7월에 들어서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모내기가 시작될 때는 일가족이나 또는 지역에 따라서는 몇몇 가족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모내기 시기는 품종에 따라 1-2개월 차이는 있으나 대개 8월말 까지는 일단락된다. 사원에서는 이 시기에 완카오판싸라는 우안거(雨安居)가 실시된다.
우기가 끝나는 시기가 오면 농민들은 추수준비를 하게 된다. 사원에는 억판싸가 행해지는 시기인 10월 중순에 해당한다. 또한 억판싸 후에는 텃까틴 행사가 거대하게 행해진다. 우기가 끝나면 벼 베기를 시작한다. 벼의 종류에 따라 수확의 완만은 있으나 대개 12월말에는 벼 베기가 완료된다. 그리고 태국식 음력 12월 보름밤에 러이끄라통 축제가 벌어진다.
수확이 끝나는 1월은 농민에게는 가장 한가한 시간이나 2모작을 하는 지방에서는 2월에 농사 준비를 시작하여 7월에 수확하게 된다. 3-4월은 최고로 더운 계절로서 도작 준비를 하게 된다. 쏭끄란이라는 태국식 설은 4월 13일부터 3일간 계속된다. 이 기간 중에는 지나가는 행인 누구에게 물을 뿌려도 실례가 되지를 않는다. 소위 이 물의 축제는 앞으로 다가올 비의 은혜를 기다리면서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다른 내용을 보시려면 아래를 참조하세요.

태국사회와 문화, 쑤팟뜨라 쑤팜, 황규희 옮김,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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